「기차는 가장 먼 길로 간다」 1편. 이 글은 2025년 9월의 개인 여행 기록과 당시의 기억을 바탕으로 썼다.
나는 어릴 때부터 기차 타는 일을 좋아했다. 명절이면 부산 해운대역이나 동래역에서 동해남부선을 타고, 울산에 조금 못 미친 곳에 있던 시골집으로 갔다. 지금은 그 노선 자체가 관광 명물처럼 되었지만, 내게는 먼저 어린 시절의 명절 풍경이다.
목적지보다 기차에 앉아 창밖을 보며 어디론가 가는 시간이 좋았다. 무엇보다 덜컹거리는 그 리듬이 좋았다. 불규칙한 듯하면서도 끊이지 않는 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가 멀리 가고 있다는 사실이 귀가 아니라 몸으로 전해졌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나는 기차의 소음을 소음으로 듣지 않는 사람이 되었다.
어른이 된 뒤에도 기차는 여전히 좋았지만, 미국에서는 좀처럼 탈 기회가 없었다. LA에서 뉴욕까지 암트랙을 타볼까 오래 고민만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고민과 결제 사이에 있어야 할 몇 단계를 과감히 생략하고 표를 끊어 버렸다. 침대칸 가격은 1,460달러. 결제 버튼을 누르는 데는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지만, 그 버튼이 사 온 여행은 3박 4일짜리였다.
처음에는 낭만을 다시 돈 주고 산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따지고 보면 아주 터무니없는 계산만은 아니었다. 3박 4일 동안 기차에서 자고 먹으며 대륙을 건넜으니, 호텔 세 밤과 식사, LA에서 뉴욕까지의 이동을 한 장의 표에 묶어 둔 셈이었다. 침대칸 승객에게는 식사와 주요 역 라운지 이용도 포함된다.1 교통비라고만 보면 비싸지만, 움직이는 숙소가 밥까지 준다고 생각하면 계산기가 조금 너그러워진다.
물론 1,460달러는 여전히 큰돈이다. 아무리 계산기를 다정하게 두드려도 큰돈은 큰돈이다. 하지만 단순히 비싼 교통비를 쓴 것은 아니었다. 그때는 집 안팎의 일로 마음이 꽤 버겁던 시기였다. 나는 어딘가로 오래 움직이는 동안, 내 마음만큼은 잠시 멈춰 쉴 수 있기를 바랐던 것 같다. 어찌 보면 낭만을 산 것이고,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위로를 샀다.
뉴욕에 빨리 가려면 비행기를 타면 된다. 그런데 내가 궁금했던 것은 도착지가 아니라 그 사이였다. 지도 위에서는 한 줄로 이어지는 거리지만, 실제로는 사막도 있고 밤도 있고 낯선 사람과 마주 앉는 식당차도 있다. 그 긴 ‘사이’를 건너 보고 싶었다.
그래서 여행은 낙스빌에서 LA로 가는 비행기부터 시작됐다. 기차를 타려고 먼저 비행기를 타는, 효율만 놓고 보면 약간 이상한 일정이었다. 그러나 가장 느린 길을 제대로 시작하려면 일단 서쪽 끝까지는 빨리 가야 했다. 낭만에도 출발점까지 가는 교통편은 필요하다.
설레서 일찍 뜬 아침
출발하던 날은 새벽부터 눈이 떴다. 다시 조금 누웠다가 일어나 스트레칭을 했다. 여행을 앞둔 날에는 몸이 일정표보다 먼저 출발하는 모양이다. 아직 낙스빌인데 마음은 벌써 LA의 플랫폼 어딘가에 가 있었다.
낙스빌에서 애틀랜타를 거쳐 LA로 갔다. 동부에서 서부까지 가로지르는 길은 생각보다 길었고, LA에 도착했을 때는 설렘보다 피곤함이 앞섰다. 그래도 괜찮았다. 이제부터는 시간표에 쫓겨 움직이기보다, 창밖을 보며 시간이 지나가도록 내버려 둘 수 있었다.
리틀도쿄에서의 점심
공항에서는 버스를 타고 유니언 스테이션으로 향했다. 기차 출발까지 시간이 남아 근처 리틀도쿄에서 짧게 시간을 보냈다. 초밥 정식에 맥주 한 잔. 가격은 예상보다 훌쩍 높았다. 설렘은 무료였지만 LA의 점심은 그렇지 않았다. 그래도 맛있게 먹었고 기분도 좋았다. 여행의 첫 식사는 음식값보다 오래 남는다. ‘드디어 출발한다’는 마음까지 한 끼에 함께 나오기 때문이다.


리틀도쿄의 아기자기한 가게들을 둘러보는 것도 좋았다. 야구를 좋아하는 내게는 커다란 오타니 벽화가 특히 반가웠다. 기차를 기다리는 몇 시간 동안 좋아하는 것들이 한꺼번에 겹쳤다. 야구와 일본 동네의 풍경, 그리고 미국 대륙을 건널 기차. 출발도 하기 전에 여행이 내 취향을 제법 정확히 알고 있었다.

리틀도쿄의 거리도 좋았지만, 이제 정말 기차를 타러 간다는 사실이 더 선명하게 기억난다. 비행기 여행에서는 공항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사람이 동선의 일부가 된다. 반면 그날의 LA에는 출발 전부터 여백이 있었다. 밥을 먹고, 거리를 걷고, 다음 이동을 생각하는 시간이 여행의 속도를 천천히 낮춰 주었다.
드디어 암트랙
저녁이 되어 LA 유니언 스테이션으로 갔다. 미국을 다니다 보면 여기에도 유니언 스테이션, 저기에도 유니언 스테이션이라 모든 역의 성이 ‘유니언’인가 싶어진다. 실제로 모든 미국 기차역이 유니언 스테이션인 것은 아니다. 여러 철도회사가 제각기 역을 운영하던 시절, 한 도시의 승객들이 함께 쓰도록 만든 역을 Union Station이라 불렀다. LA 유니언 스테이션도 세 철도회사가 각자의 터미널을 하나로 합치기 위해 만든 곳이다. 그러니까 ‘유니언’은 멋을 내려고 붙인 이름이 아니라, 철도회사들이 한 지붕 아래 살림을 합쳤다는 흔적이다.2


그 역사를 알고 나니, 장거리 열차와 지역 교통이 뒤섞이는 풍경이 조금 다르게 보였다. 각자 다른 길에서 온 사람들이 잠시 같은 대합실을 쓰고, 다시 저마다의 방향으로 떠난다. 역은 이름처럼 계속 사람을 모았다가 흩어 보내고 있었다.
침대칸 표로 이용할 수 있는 메트로폴리탄 라운지에도 들렀다. 1,460달러를 결제할 때는 손이 조금 떨렸지만, 라운지에 들어갈 때만큼은 제법 당당했다. 거대한 역사와 달리 안쪽은 출발 전 잠시 숨을 고르기에 좋은 작은 공간이었다.


암트랙에 오른 뒤의 첫인상은 아주 단순했다. 너무 좋았다. 객실이 넓어서도, 시설이 호화로워서도 아니었다. 정말 내가 원하던 여행 안에 들어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여행의 기준도 바뀌었다. 어디에 몇 시에 도착하는지보다 지금 창밖에 무엇이 지나가는지가 중요해졌다. 객실은 생활 공간이 되고, 식당차에서는 낯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한 상에 앉게 된다. 첫 저녁에는 스테이크를 골랐다. 미국 대륙을 가로지르는 첫 기차 식사라면 역시 스테이크여야 했다. 논리라기보다는 기분의 문제였고, 여행에서는 대체로 기분이 이긴다.


식탁에는 운치 있는 꽃 한 송이도 놓여 있었다. 암트랙은 객실을 힘껏 흔들면서도 식탁의 낭만은 빼먹지 않았다.

그날 저녁에도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전혀 모르던 사람들이 같은 방향으로 며칠을 움직인다는 사실에는, 기차에서만 생기는 묘한 친밀감이 있다. 비행기에서는 옆자리 사람과 팔걸이를 두고 조용한 외교전을 벌일 때도 있지만, 식당차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과도 제법 긴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 대화 중에는 오래 남은 생각도 있었다. 사람은 혼자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사람과 함께 어떻게 변해 가는가가 중요하다는 이야기였다. 여행 중의 대화는 종종 목적지와 아무 관계가 없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오고 나면 그런 말 한마디가 풍경보다 오래 남기도 한다.
해를 보며 잠에서 깨다
첫날 밤, 객실에 마련된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그 침대에서 첫 해돋이를 보았다. 너무 멋졌다. 기차 안에서 맞는 아침의 가장 좋은 점은 눈을 뜨자마자 이미 낯선 곳을 지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잤을 뿐인데 기차가 밤새 여행을 해놓았다. 상당히 성실한 숙소였다.


신기하게도 아주 잘 잤다. 흔들리고 소음도 있었지만, 오히려 기차 체질인가 싶을 만큼 깊이 잤다. 어릴 때부터 좋아했던 덜컹거림은 내게 소음이라기보다 잠을 재우는 리듬이었다. 다른 승객들은 흔들림 때문에 잠을 설쳤다고 했다. 같은 객차가 누구에게는 고난도 수면 환경이고, 내게는 거대한 흔들침대였던 셈이다.
아침과 점심을 식당차에서 먹고, 창밖 풍경을 보았다. 뉴멕시코와 애리조나를 지날 때는 나무와 하늘의 색감이 익숙한 동부와 달랐다. 더 강렬한 색을 막연히 기대했는데, 실제 풍경은 내가 상상한 방식과는 또 달랐다. 여행은 늘 머릿속 예고편을 조금씩 수정한다.

그래도, 아니 그래서 창밖 풍경이 좋았다. 정확히 어디인지 몰라도 괜찮았다. 기차는 계속 달렸고, 나는 창가에 앉아 낯선 땅을 오래 바라볼 수 있었다. 위치를 몰라도 풍경은 충분히 풍경이었다.

기차는 알바커키에서 잠시 멈췄다. 밖으로 나와 역 앞에 서 보았다. 플랫폼에서 보니 기차는 생각보다 훨씬 길었다. 타고 있을 때는 내 객실과 식당차 정도만 세상의 전부처럼 느껴졌는데, 내려서 보니 그 작은 세계가 몇 칸이고 계속 이어졌다. 객실을 잘못 찾으면 운동량까지 챙길 수 있을 길이었다.




여행은 기대한 장면을 확인하는 일이기도 하지만, 기대와 달랐던 장면을 받아들이는 일이기도 하다. 때로는 그 차이 때문에 더 오래 기억된다.
기차 안에서는 그렇게 하루가 흘렀다. 식사를 하고, 창밖을 보고, 낯선 사람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객실로 돌아왔다. 일정표만 보면 한 일이 별로 없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이 여행에서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이었다. 빠른 여행에서는 비어 있다고 여길 시간이, 여기서는 여행 그 자체가 되었다.
멍때리기에도 장르가 있다면 최고는 불멍과 기차멍이 아닐까. 불은 제자리에서 계속 바뀌고, 기차 창밖은 움직이면서 계속 바뀐다. 둘 다 보고 있으면 생각이 잠깐 조용해진다.
요즘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바뀌고, 그 속도를 따라가느라 스트레스를 받는 시간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여유는 굉장한 호사다. 기차는 나를 다음 도시로 데려가면서도 그 호사를 누릴 시간을 남겨 주었다. 나는 가만히 있었고, 풍경이 알아서 찾아왔다.
다음 날, 기차는 시카고로 향했다. 아직 뉴욕은 멀었다. 시카고에 가까워질수록 창밖 저편으로 마천루가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며칠 동안 낮은 지평선과 사막을 지나온 뒤라 도시의 윤곽은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긴 기차의 첫 막이 내려갈 시간이었다.

뉴욕에는 아직 닿지 못했지만, 이 여행은 목적지에 닿기 전부터 이미 충분히 완성되고 있었다.
2편에서는 연착 끝의 시카고, 다시 탄 야간열차, 그리고 뉴욕 도착 뒤의 하루를 이어서 기록한다.
작성 과정: 이 연재는 ChatGPT-5.6 Terra와의 인터뷰로 사실과 기억을 정리하고 초안을 구성했으며, ChatGPT-5.6 Sol의 문장 편집을 거쳤다. 경험의 사실 확인과 최종 공개 결정은 작성자가 했다.
Footnot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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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트랙 침대칸 안내에 따르면, 개인 침대칸 승객에게는 침구·객실 승무원 서비스·식사·주요 역 라운지 이용 등이 포함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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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Union Station 역사 자료에 따르면, 이 역은 Southern Pacific·Union Pacific·Atchison, Topeka and Santa Fe 철도회사가 기존의 세 로스앤젤레스 터미널을 통합하기 위해 추진한 공동 사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