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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세혈관 감압술 기록 ①: 오른쪽 반측성 안면경련과 수술을 결심하기까지

이 연재는 오른쪽 반측성 안면경련(hemifacial spasm, HFS) 으로 미세혈관 감압술(microvascular decompression surgery, MVD) 을 받고 회복하기까지의 개인적인 기록이다. 이후에는 한국어 명칭인 반측성 안면경련과 미세혈관 감압술로만 적는다. 증상과 치료, 회복 과정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며 이 글은 의료적 판단을 대신하지 않는다.

2024년 초, 눈 밑의 작은 경련이 더는 단순히 피곤해서 생기는 일로 느껴지지 않았다. 처음에는 마그네슘이 부족한가 싶어 영양제를 챙겨 먹었다. 영양제 한 알이 이 문제를 조용히 끝내 주기를 기대했다. 하지만 경련은 내 바람과 상관없이 남아 있었다.

오른쪽 얼굴이 일그러지는 날은 점점 늘었다. 무엇보다 힘든 것은 예고가 없다는 점이었다. 사람을 만나거나 일을 하는 중에도, 조용히 쉬는 아침에도 불쑥 찾아왔다. 심한 날에는 얼굴의 경련을 느끼며 눈을 떴다. 경련이 심해질수록 사람을 만나는 일도, 내 얼굴을 의식하지 않고 지내는 일도 어려워졌다.

그 무렵에는 생활과 일의 스트레스도 여러 겹으로 쌓여 있었다. 스트레스가 반측성 안면경련의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게는 경련이 심해지는 때와 마음이 가라앉는 때가 맞물려 서로를 더 힘들게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경련은 얼굴에만 머물지 않았다. 하루를 대하는 마음까지 조금씩 갉아먹었다.

“조금만 더 참자”를 반복한 시간

2025년 여름쯤에는 더는 이렇게 지낼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곧바로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에 가서 진료와 수술을 받는 데 드는 비용, 생활의 책임, 이미 잡힌 일들을 떠올릴 때마다 ‘조금만 더 참자’는 말로 나를 붙들었다.

미국 테네시에 살면서 신경외과 진료를 받는 일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반측성 안면경련과 미세혈관 감압술에 관한 논문과 환자 경험, 수술 후기를 거듭 찾아봤다. 검색을 많이 한다고 용기가 같은 속도로 생기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는 조금씩 알게 됐다. 보톡스나 약물 치료를 직접 받아 보지는 않았지만, 당시의 내게는 일시적인 대처처럼 느껴졌다. 내가 찾고 있던 것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이었다.

2024년 8월 8일, 한국에서 봉생기념병원 이상훈 원장님을 처음 만났다. 진료실에서는 “이~, 오~, 우~”를 해 보라고 하셨는데, 하필 그 순간에는 얼굴이 크게 일그러지지 않았다. 증상은 늘 내 일정을 고려하지 않고 찾아왔으면서, 정작 보여 주어야 할 때는 지나치게 얌전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협조적인 반측성 안면경련이 아니었다. 다행히 예전에 찍어 둔 영상을 보여 드릴 수 있었다.

미국에서 왔다고 말씀드리자 그날 근전도 검사와 MRI까지 받을 수 있었다. 그날은 한국의 유도리가 얼마나 고마운지 새삼 느꼈다. 검사 결과를 보며 원장님은 비교적 굵은 혈관이 안면신경과 맞닿아 자극하고 있어 반측성 안면경련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수술은 가능한 선택지였지만 급한 일은 아니며 기다릴 수도 있다고 하셨다. 성급히 결정할 필요는 없었다. 동시에 언젠가는 진지하게 선택해야 할 문제라는 사실도 선명해졌다.

외래 진료는 길지 않았다. 그래도 미리 찾아본 정보와 MRI에서 본 내용, 원장님의 설명은 큰 틀에서 한 방향을 가리켰다. 원장님은 무뚝뚝한 인상이었지만 필요한 설명은 명료하게 해 주셨다. 막연한 불안만 있던 자리에, 내가 실제로 밟아 갈 다음 단계가 생겼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결국 마음을 돌린 이유는 단순했다. 계속 미루는 일이 더는 나 자신을 돌보는 방식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은 무서운 일이었지만, 내게는 여러 선택지 가운데 하나라기보다 언젠가는 해야 하는 일에 가까웠다. 마치 군대에 가야 하는 것처럼, 자꾸 달력을 뒤로 넘긴다고 없어질 일이 아니었다. 겁만 내기보다 담담히 받아들이게 됐다.

예약 뒤에 찾아온 안도감

진단을 받은 뒤에도 실제 수술은 2025년 11월까지 미뤄졌다. 그런데 막상 수술 일정을 확정하고 나니 불안보다 안도감이 먼저 찾아왔다. 수술이 무섭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다만 그때의 내게는 수술보다 끝날 기미 없이 이어지는 반측성 안면경련이 더 무서웠다.

이제 이 악몽에도 끝이 생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글에서는 실제 수술을 위해 다시 부산에 와 입원하고, 봉생기념병원에서 수술을 준비했던 며칠을 기록한다.


작성 과정: 이 연재는 ChatGPT-5.6 Terra와의 인터뷰로 사실과 기억을 정리하고 초안을 구성했으며, ChatGPT-5.6 Sol의 문장 편집을 거쳤다. 경험의 사실 확인과 최종 공개 결정은 작성자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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